소설 아리랑의 배경을 재현한 곳, 김제 아리랑문학마을
정부에서는 지원금을 상품권으로 지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역상품권을 어디에서 사용하고 어떠한 식으로 구매되어지는지 또한 혜택은 무엇일까? 본인이 귀촌한 지역에서는 김제사랑상품권이라는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김제사랑상품권은 지역자금의 역외유출을 막고 지역 내 소비 촉진을 통한 지역상권 보호와 경제활성화를 위한 김제시에서 발행하고 김제시 가맹점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김제시 지역화폐 상품권의 종류 이미지 참고 22.07.01. 부터 파트너 매장 신청한 업체만 김제사랑카드 사용이 가능합니다.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아리랑 속 장소들을 재현하였습니다. 김제를 배경으로 민족의 수난과 투쟁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홍보관, 하얼빈 역사, 이민자 가옥, 내촌 외리 마을, 근대 수탈 기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장면을 실감 나게 볼 수 있는 하얼빈 역사, 일제의 수탈에 고향을 떠나 타지로 갔던 사람들의 열악한 이민자 가옥, 근대 수탈 기관을 재현해 낸 내촌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외리 마을의 촌락과 토지조사사업으로 조선의 땅을 빼앗는데 활용되었을 망원경, 나침반, 카메라, 주판, 등사기 등이 전시된 죽산 면사무소, 주재소, 우체국, 정미소 등도 관람할 수 있습니다.
봉화산 숲길 안내도
봉화산 숲길 안내도가 있는 곳에서 봉화산으로 올라가려니 길을 지도하는 리본도 보이지 않고 GPS에 나오는 방향에는 길이 없습니다.. 대략 여름이 지나면서 잡풀이 우거져 길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잡풀을 헤치고 가면서 멀리 보니 리본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길이 아닌 언덕으로 잡풀과 숲을 헤치고 리본이 있는 곳에 도착하여 길을 걸었다. 길을 걸으면서 여름이 지나면서 잡풀이 우거져 길을 찾을 수 없는 곳이 숱하게 많이 보았습니다.
코리아둘레길 지킴그들이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너무 무신경한 것 같아 아쉽게 생각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쌓아 만든 옛 저수지의 중수비와 둑입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흘해왕 21년330에 처음으로 벽골제를 만들었는데 둘레가 1천8 백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는 이 지역이 신라 땅이 아닌 백제땅이었으므로 백제 11대 비류왕 27년330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일직선으로 3km정도의 둑만이 남아있으며 1925년 동진토지개량조합에서 이 둑을 농사짓는데 필요한 물을 대는 통로로 고쳐 이용하면서 원래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1975년 호수 물의 양을 조절하던 수문이 있던 자리 2곳을 발굴조사하여 대크기의 높은 수준의 측량 기술이 이용된 공사였던 것이 밝혀졌습니다. 당시 이런 호수 축조가 가능할 정도의 고도로 발달된 토목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증명해 주며 우리나라 과학기술사에서도 획기적인 사실을 제공해 주는 유적입니다.
남포 어린이집
어린이 집을 지나 길을 조금 가니 시골 길을 걸으면서 좀처럼 보지 못했던 슈퍼가 보이고 식당이 있습니다. 지도에 의하면 성덕반점이라고 표시되어 있어서 초기에는 중국음식점인가 오인을 했는데 인접하게 가니 문을 닫아 놓은 것 같았습니다.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늘 먹을 곳과 잘 곳을 검색해 거기에 맞추어 걷고, 이번 여정에서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려고 생각했는데 약간 난감했다. 그래도 문을 열어보니 다행스럽게도 문이 열리고 밥을 먹을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자리에 앉으니 주문도 받지 않고 그냥 돼지김치찌개를 가져다줍니다. 전혀 조금도 기분이 나쁘지 않게 집에서 밥을 먹듯이 간편하게 먹을 수 있었어요. 밥을 먹는 도중에 아마 이 근방에서 공사를 하는 사람들인지 서넛이 들어와 점심을 먹습니다. 정말 간편하게 집에서 밥을 먹듯이 맛있게 포식을 하였습니다. 아마 서해랑길을 걷는 많은 사람들은 이 잡에서 한 끼를 해결하고 가는지 주인아주머니가 길손들을 잘 알고 있었어요.
왜놈 순사 옵니다.
1920년대 초순사는 높은 교육과정을 받지 않고도 상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비교적 취직이 쉬운 직업 이었다. 하지만 경찰시험에 합격한 뒤에는 동네 사람과 친족 등 50 60명이 줄을 지어 환송 하는 환대를 받았고, 주재소에 배치되어서는 면민 80여 명이 모여 환영회를 베풀어줬고 면민 모두가 굽실굽실 하는 극진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주재소의 순사는 탄압과 감시와 억압이 심해 증오와 공포의 대상 이었다.
이에 우는 아이를 달래는 방법 중의 하나로 왜놈 순사 옵니다. 는 말이 생겼습니다. 이들은 일본 육군 헌병 하사관 혹은 일본 본토에서 차출된 경찰로 자질이 형편없었습니다. 반면, 조선인 순사 중에는 자발적 친일순사의 악명이 높 았다.
자주 묻는 질문
봉화산 숲길 안내도
봉화산 숲길 안내도가 있는 곳에서 봉화산으로 올라가려니 길을 지도하는 리본도 보이지 않고 GPS에 나오는 방향에는 길이 없습니다. 궁금한 사항은 본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남포 어린이집
어린이 집을 지나 길을 조금 가니 시골 길을 걸으면서 좀처럼 보지 못했던 슈퍼가 보이고 식당이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본문을 참고 해주시기 바랍니다.
왜놈 순사 옵니다.
1920년대 초순사는 높은 교육과정을 받지 않고도 상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비교적 취직이 쉬운 직업 이었다. 궁금한 사항은 본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